프랑스 역사 흐름 이해하기

2025-05-24 이재성

공부하기 전의 나에게 설명해 준다는 마음으로 프랑스 역사의 흐름을 적어 봤어. 혹시 너가 나처럼 여기 저기서 주워 들은 것들은 많다만 이게 하나의 이야기로는 그려지지 않았다면 이 글이 조금 도움이 될… 걸?! 난 이제 훨씬 이해가 됐거든.

큰 틀은 이래.

  • 중세 (476 – 1453년)
  • 근대의 강한 왕 (1600년대)
  • 프랑스 혁명 (1789년)
  • 제1,2차 세계대전 (1914-1945년)

이걸 10개의 연결된 이야기로 설명해 볼게.

1. 갈리아 족의 땅을 로마가 정복해

옛날, 프랑스의 땅엔 갈리아 족이 살았어. 벨트에 적들의 머리를 달고 싸우는 무서운 전사들과, 참나무 숲에 사는 신비한 드루이드(갈리아 족의 제사장)들이 있는 부족이었어. 이들은 로마에 정복당해. 정복을 이끈 자는 그 유명한 율리우스 카이사르. 당시에는 장군이었던 카이사르는 갈리아를 정복하고, 이를 바탕으로 로마의 최고 권력을 쥐게 돼.

갈리아 인들은 로마의 정복 아래, 그들의 문화에 잘 동화되어 살아가. 서로마제국이 수백년 후 멸망할 때 까지 말야.

2,000년이 지난 지금도 로마의 건축물들이 프랑스 곳곳에 남아있어. 만약 반고흐가 살던 아를이란 마을에 가게 된다면 거대한 원형경기장을 볼 수 있을거야. 이게 로마 때 만든, 기원 후 90년에 지은 건물이야.

아를의 원형경기장 – Rsuessrb

2. 중세의 시작 : 로마가 몰락하자 프랑크 족이 프랑스 지역을 장악했어

로마는 점점 커져서, 한 명의 황제로는 전체를 통치하기 어려워졌어. 그래서 두 명의 황제가 각각 서쪽(서로마 제국)과 동쪽(동로마 제국)을 나누어 맡기로 했어.

서로마 제국은 점점 상황이 어려워지다가, 476년에 게르만족에 의해 몰락하고 말아. 그러자 프랑스 지역을 원래 통치하던 로마가 없어진거지. 이 때 프랑크 족의 왕 클로비스가 이 지역을 장악하게 됐어. 프랑스의 첫 왕이 등장한거야.

클로비스가 기독교로 개종한 사건이 역사적으로 중요하게 여겨져. 당시 서유럽의 왕 중에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거든. 이로써 프랑스와 기독교의 길고 깊은 인연이 시작되지.

클로비스가 기독교로 개종한 날, 세례를 받은 곳은 랭스 Reims 라는 도시의 대성당이었어. 나중에 프랑스의 왕들은 전통을 잇기 위해서 대관식을 꼭 이 랭스대성당에서 치뤘어. 지금도 많은 관광객이 찾는 아름다운 성당이야.

랭스 대성당 – MarkKnight

3. 중세의 봉건제와 기독교

서로마 제국이 몰락하며 역사는 중세로 진입해. 봉건제와 기독교의 시대가 온 거야.

봉건제가 뭘까? 왕은 귀족에게 땅을 주고, 귀족은 그 땅 안에서는 자기가 왕처럼 행동하는 제도야. 법도 집행하고 세금도 걷지. 대신 누가 공격해오면 스스로 그 땅을 지켜야해. 프랑스의 왕은 전국을 다스리기엔 약했기 때문에, 충성심 있는 귀족들에게 권력을 나눠준거야.

로마에선 봉건제가 필요 없었어. 로마 황제는 막강한 군대와 잘 정비된 도로가 있었고, 따라서 넓은 영토를 직접 다스릴 수 있었거든. 하지만 프랑스의 왕들은 그만큼 강하지 못했기 때문에 봉건제를 통해 통치해야 했어. 이후 봉건제는 천 년 넘게 프랑스의 기본 사회구조로 작동했지. 폐지된 건 불과 2백년 전, 프랑스 혁명에서야!

프랑스를 수놓는 수많은 성들은 오래된 봉건제 역사의 흔적이야. 아름다운 모습 뒤엔 아마 적들의 포위에 목숨이 오고 가는 힘겨운 이야기들이 가득할 걸?

다른 한편으로, 중세는 기독교의 시대지! 그 중 프랑스는 중세 기독교 세계의 중심이었어. 봉건제의 약한 왕이 강한 귀족들 사이에서 어떻게 왕권을 유지했을까? ‘바로 이 사람이 신이 인정하는 왕이다’라는 신성한 의식을 교황이 치뤄주거든. 이로써 프랑스 왕은 기독교 신의 대리인이 되는 것이고, 프랑스는 신의 왕국이 되고, 기독교를 믿는 이 땅의 사람들은 왕을 따르게 되는거지.

거대한 규모의 대성당과 수도원들이 지금도 많이 남아 있어. 몽생미셸의 수도원, 클루니의 수도원, 아비뇽의 교황처에 가면 중세 사람들이 느꼈을 신앙심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거야.

몽생미셸 – Dictionary of French Architecture from 11th to 16th Century

4. 중세의 끝 : 쟌 다르크의 활약 끝에, 프랑스는 영국과 싸운 백년전쟁에서 승리해

수백 년 동안 프랑스의 왕위는 늘 왕의 아들에게 이어졌어. 그런데 어느 날, 왕의 아들들이 모두 죽고 말았지. 남은 후계자는 둘. 하나는 그의 딸의 아들, 다른 하나는 남동생의 아들. 누가 다음 왕이 되어야 할까?

문제는, 딸의 아들은 이 때 영국의 왕이었다는 거야. 프랑스 귀족들은 영국의 왕이 프랑스로 오는게 싫었지. 그래서 서둘러 남동생의 아들을 왕으로 모셨어. 랭스 대성당에서 대관식이 치뤄졌지. 하지만 영국 왕 (딸의 아들)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어. 자신이 프랑스의 왕이 되어야 했다며 전쟁을 시작해. 프랑스 땅의 주인을 가리기 위해 벌어지는 백년전쟁이 시작된거야.

전쟁이 끝날 무렵, 프랑스는 영국에게 압도적으로 밀리고 있었어. 파리는 영국에게 빼았겼고, 프랑스 왕은 대관식도 못 치루고 나라 중부로 피신해있지. 절망적이야. 근데 이런 상황에서, 시골에서 나타난 17세 소녀가 고작 1년 만에 전세를 뒤집었다고 하면 믿겠어? 그 기적 같은 이야기의 주인공이 바로 쟌 다르크야.

쟌 다르크, 이름이 거창하게 들리지만 사실 그냥 쟌 Jeanne 이란 이름의 소녀야. ‘다르크 d’Arc’는 출생 지역 이름일 뿐이야. 그는 프랑스 왕을 찾아가, 자신이 신의 계시를 받았고, 당신을 진정한 프랑스의 왕으로 만들겠대. 왕은 물론 황당했어. 하지만 쟌을 지켜보니 어쩌면 정말 특별한 사람일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들었어. 결국 어린 쟌은 너무나도 중요하지만 불리한 전투의 선두에 서서 깃발을 들고 싸워. 결과는 놀라운 승리였어. 프랑스의 사기에 불이 붙더니, 1년만에 왕은 랭스 대성당까지 영토를 회복해 제대로 된 대관식을 치르게 됐어. 정말 쟌의 말대로 모두 이루어진거야!

하지만 그는 곧 전투에서 포로로 잡히고 말아. 루앙이라는 도시에서 종교 재판을 받고 산 채로 불태워져. 그 때 나이는 19세였어.

승리의 상징이었던 쟌을 잃은 프랑스는 그럼에도 무너지지 않았어. 오히려 더 굳게 뭉쳐서, 마침내 전쟁에서 승리해.

지금도 프랑스를 여행하다 보면 그의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어.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옆 피라미드 광장에 가면 쟌의 동상이 있을거야. 그리고 화형이 있었던 루앙의 광장엔 이제 아름다운 교회가 서있어. 교회의 이름은 성 쟌 다르크 Saint Jeanne d’Arc 교회야.

쟌 다르크를 상상해서 그린 동시대 서기의 낙서 – Clément de Fauquembergue (1429)

5. 태양왕 루이 14세의 베르사유 궁전

백년전쟁이 끝나자 중세도 막을 내렸어. 왜 그럴까? 전쟁이 오래 이어지자 왕의 힘이 강해지게 되었고, 왕의 힘이 세질수록 중세의 핵심인 봉건제가 무너지거든.

왕은 봉건제 사회에선 돈과 군대가 필요할 때 늘 귀족의 도움을 받아야 했어. 왜냐하면 나라의 대부분은 귀족들의 땅이었는데, 이 땅의 세금과 군대를 귀족이 직접 관리했거든. 그러니 왕은 서쪽에 영국군이 쳐들어오면 동쪽의 귀족을 설득해야 했겠지. “제발 우리 서쪽 귀족들을 도웁시다! 군대와 돈을 지원해주세요!” 하지만 이 길고 힘든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선 온 프랑스의 힘, 돈, 그리고 의사결정권이 한 곳으로 모여야 했어. 왕은 결국 귀족들의 양보를 얻어내어 직접 세금을 걷고 군대를 운영하게 됐지.

전쟁은 끝났지만 왕은 자신에게 모인 이 힘을 다시 돌려줄 생각은 없었어. 오히려 이 힘을 바탕으로, 귀족의 도움 없이도 나라를 통치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데 집중했어. 귀족 대신 왕이 임명한 사람이 법을 집행하고 세금을 걷고 하는 식으로 말이야. 그러자 점점 귀족들은 사회에서 설 자리를 잃어갔고, 봉건제가 무너지기 시작한거지.

왕의 권력은 점점 강해지다가, 백년전쟁이 끝난 약 이백년 후에 프랑스 역사상 가장 강한 왕권을 보여준 왕이 등장해. 바로 루이 14세야. 왕의 별명은 태양왕이었어. 태양이 없으면 어떤 생명도 살 수 없듯이, 온 세상의 중심에 태양이 있듯이, 그런 왕이 되고자 했던 루이 14세. 그는 베르사유 궁전을 지금의 거대한 모습으로 증축하고선 여기서 나라를 통치하기 시작했어. 이제 왕은 귀족의 눈치를 보지 않아. 오히려 온 나라의 귀족들이 왕의 눈에 들기 위해 경쟁해. 그들은 고향의 아름다운 성을 버리고 베르사유 궁전의 좁은 방에 머물면서, 연회장에서 춤을 추고 숨 막히는 사교생활을 이어가지. 귀족의 생활을 유지하려면 왕이 임명하는 높은 직책과 여기서 나오는 돈이 필요했거든. 반대로 눈 밖에 나면 순식간에 영향력을 잃거나, 심지어 감옥에 가기도 했어. 잘 보여야겠지?

백년전쟁이 끝난 1453년부터 루이 14세가 통치한 1643 – 1715년 사이에 사회에서 여러 변화가 있었어. 먼저, 르네상스가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고, 교황의 권위에 도전하는 개신교가 나타나 종교전쟁이 일어났어. 그리고 신대륙 발견에 이어 프랑스는 미국, 캐나다, 아프리카 등지에 식민지를 만들기 시작하지. 이 시기는 그렇게, 중세가 끝나가고 새로운 세상이 열리던 시기였던 거야.

루이 14세 – Hyacinth Rigaud (1701)

6.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고 왕은 처형돼.

이전의 로마, 중세, 루이 14세… 너무 옛날 얘기 같았잖아? 이 시기에 살던 사람들은 우리와 너무 다른 세상의 사람일 것 같다고 생각해도 충분히 이해가 돼. 하지만 이젠 아냐. 우리의 이야기는 이제 근대로 들어왔어. 이 때의 사람들이 사실 너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사람들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면 더 쉽게 프랑스 혁명을 이해할 수 있어. 우리에게 갑자기 중세의 계급 구조를 강요하자 ‘더 이상 못 참겠다’ 하고 폭발한 사건이 바로 프랑스 혁명이야.

영국은 이 때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야. 불과 몇 년 전에 프랑스는 영국과의 전쟁에서 져서 많은 식민지를 빼앗기고 분에 차 있었어. 복수하고, 영국을 약하게 만들 수만 있다면…! 근데 마침 영국의 식민지 미국이 독립 선언을 하고선 영국과 전쟁을 시작한 거야. 기회다. 프랑스는 미국을 적극 도와. 미국은 전쟁에서 이기고, 독립을 했지. 영국은 중요한 식민지를 잃었어. 좋아. 좋긴 한데, 미국을 돕느라 돈을 너무 많이 썼다. 프랑스가 빚에 허덕이게 됐어. 세금을 더 걷어야 해.

프랑스의 젊은 사람들은 다 봤지. 우리가 열심히 도운 미국이란 나라가 왜 독립하겠다고 했는지, 독립선언문에 제일 먼저 나오는 말이 뭔지 말야.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고…”
그리고 전쟁은 이겼으나, 빚에 빠진 우리 나라를 봐. 우리를 빚에 빠뜨린 왕은 세금을 더 걷기 위해 거대한 회의를 열겠대. 온 나라에서 뽑힌, 세 신분의 대표자들이 모이는 회의야. 세 신분이란 중세 시절부터 이어져 온 계급 체계로, [1] 성직자 [2] 귀족 [3] 평민 이렇게 나뉘어져 있었어. 하지만 열심히 뽑힌 대표자들이 회의를 위해 베르사유에 모여보니, 셋째 신분인 평민의 말은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거야. 투표를 하라고 하지만 성직자나 귀족들에 비해 투표권이 적어서 의미도 없고, 게다가 자리 배치나 태도나 모든 게 수백 년 전 중세의 신분제 그대로야. “아, 이 나라는 우리를 정말 무시하는구나. 여긴 귀족과 성직자의 나라구나.”

평민의 대표자들은 모여서 선언했어. 우린 프랑스인의 96%를 대표한다. 이제 우리끼리 따로 ‘국민의회’란 것을 만들 것이고, 세금에 관련된 결정은 이 국민의회에서 하겠다. 우릴 해산시키려면 총으로 쏘던가! 물론 왕은 갑작스레 평민들이 만들겠다고 선언한 이런 의회를 인정해주지 않았겠지? 이렇게 생긴 갈등으로 프랑스 혁명이 시작돼. 이 때가 1789년 6월이야. 한 달 후를 보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시민들이 파리의 바스티유 감옥을 점령했어. 그 한 달 후 8월엔 전국적인 봉기가 일어나, 귀족들에게 특권을 부여하는 서류들을 평민들이 빼앗아서 불태워. 10월엔 왕과 가족들이 베르사유를 떠나 파리의 튈르리 궁전에 갇히지. 그리고 4년이 지나면 왕 루이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처형돼.

왕의 가족이 갇혀 지내던 튈르리 궁전인 이젠 없지만, 루브르 박물관 바로 옆에 있는 큰 정원이 바로 튈르리 정원이야. 그 바로 옆엔 왕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처형된 콩코드 광장이 있어. 영화로도 나온 레미제라블은 프랑스혁명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니, 이런 이야기들을 알고 보면 또 다른 재미가 있을 거야.

단두대에 올라가는 루이 16세 – Charles Benazech (1793)

7. 나폴레옹이 ‘프랑스 제국’의 황제가 돼

갑자기 왠 제국? 무슨 일이 일어난걸까?

혁명은 일어났고 왕은 처형됐어. 하지만 나라가 잘 돌아가지 않아. 내부적으론 다른 정치체제를 원하는 세력들끼리 싸움이 끊이지 않아 혼란스러워. 게다가 주위 나라의 왕들은 이 ‘왕을 처형한 나라’를 인정할 수 없다며 계속 공격해와. “왜 이렇게 힘들지? 이럴 거면 혁명은 왜 한거야” 싶은 무렵, 누군가가 중요한 전쟁들을 이겨와. 바로 전쟁의 천재 나폴레옹이야.

나폴레옹은 해외에서 전쟁들을 이기고 프랑스로 돌아왔어. 사람들은 이 때 혼란스러운 나라를 이끌어갈 지도자를 원하고 있었는데, 마침 돌아온 이 젊은 장군이 마음에 들었지. 나폴레옹도 기회를 놓치지 않고 쿠데타로 권력을 잡아. 그리고 몇 년 후, 프랑스를 제국이라 선언하고, 새 제국의 황제로 자리 잡아.

왜 왕이 아니고 황제일까? 왜 왕국이 아니고 제국일까? 당시의 프랑스 사람들은 ‘왕’이란 단어가 좋게 들리지 않았거든. 혁명까지 일으키며 벗어나고 싶었던 시절이 바로 ‘왕’이 있던 시절이었잖아. 나폴레옹은 황제라는 단어를 써서 ‘우리는 혁명 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제국의 시대로 나아가는 것’ 이라고 얘기한 거지. 그리고 마치 로마 제국처럼, 프랑스가 유럽 전체를 아우르는 위대한 나라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는 것이기도 했어.

프랑스 제국은 수많은 전쟁을 치르고, 수많은 전쟁을 이겨. 이로써 유럽 대륙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어. 프랑스군이 가는 곳엔 프랑스의 문화가 따라왔고, 당시로선 말 그대로 혁명적이었던 프랑스 혁명의 사상과 문화가 유럽에 퍼지게 돼. 예를 들어 봉건제의 폐지를 여러 지역에서 앞당겼어. 프랑스에서도 프랑스 혁명 때 봉건제 폐지가 선언되었으니, 여전히 유럽 여러 지역은 봉건제로 운영되고 있었거든. 프랑스는 이런 지역들에서 봉건제를 없애고, 신분 계급이 없는 사회를 위한 사상과 제도들을 들여왔어.

하지만 전쟁으로 흥한 자 전쟁으로 망했고, 결정적인 전쟁에서 패배한 나폴레옹의 제국은 설립 11년 만에 적군에게 파리를 빼앗겨. 나폴레옹은 유배되어, 저 아득히 멀리 대서양 한 중간에 있는 외딴 섬에서 생을 마감해. 전쟁에서 진 프랑스는 적들의 압박에 어쩔 수 없이 처형된 왕의 혈통을 찾아 다시 왕으로 모시게 돼. 그 이후 55년이 지나서야 비교적 안정적인 공화국, 그러니까 왕이나 황제가 없는 나라가 만들어졌어. 그 전까지 프랑스는 왕국, 공화국, 또 한 번의 제국 등으로 짧은 시기들을 보내며 혼란을 겪어.

현대의 파리는 나폴레옹에 엮인 이야기가 아주 많아! 혁명의 중심지 콩코드 광장에 서서 둘러볼까? 먼저 동쪽으로는 튈르리 정원이 있지. 여기엔 지금은 철거된 튈르리 궁전이 있었고, 이 곳엔 처형된 루이 16세의 가족도 살았지만 나폴레옹이 황궁으로도 쓴 곳이야. 그 너머로 보이는 루브르박물관에는 나폴레옹이 전쟁에서 챙겨온 전리품들로 가득해. 조금 더 가면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에선 그의 황제 대관식이 열렸었지. 이제 북쪽을 보면 대로를 끝 방돔 광장에 거대한 기둥이 보이는데, 그 꼭대기에 서 있는 사람이 나폴레옹이야. 고개를 돌려 서쪽 대로 끝에 보이는 개선문도 나폴레옹의 전쟁 승리를 기념하는 건축물이지. 우리 나라의 광화문 광장에 세종대왕과 이순신장군의 동상이 있는 것처럼, 프랑스 사람들에겐 나폴레옹이 그런 인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쿠데타 전의 이집트 원정 – Antoine-Jean Gros (1810)

8. 두 번의 세계대전에서 너무나도 큰 피해를 입어.

1900년대 초, 유럽 국가들은 서로를 두려워하고 있어. 기차, 통신 같은 새로운 기술들이 등장해서, 이젠 전쟁이 터지면 정말 순식간에 적들이 몰려올 수 있어. 그러면 언제 전쟁이 터지더라도 싸울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어야겠지? 맞아. 모두가 그러고 있었어. 모두가 전쟁을 준비하고 있고, 모두가 예민해. 게다가 강대국들이 서로 동맹을 맺다보니 유럽은 두 진영으로 나뉘어져버렸어. 전쟁을 피하려고 동맹을 맺은건데, 아이러니하게도 이젠 대륙 어디에서든 갈등이 하나 터져버리면 모두가 전쟁에 달려들어야하는 판국이 되어 버렸어. 결국 1914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가 암살당해.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은 세르비아에 전쟁을 선포하고, 6일이 지나보면 유럽의 모든 강대국이 전쟁에 참전해 있어.

전쟁 시작 4년 후, 프랑스는 전쟁에서 이겼지만 엄청난 피해를 입었어. 전사자는 무려 140만명. 이게 실제로 어떤 느낌일까? 프랑스는 20 – 45살의 남성을 특정 면제 대상 제외 모두 참전시켰어. 너 주위의, 20살부터 45살까지의 모든 남자가 싸우러 간 거야! 이게 800만명이었어. 이 중 열에 둘이 죽고, 다섯이 부상을 입은거야.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걸까 싶지 않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막막한 건, 왜…? 왜 전쟁이 일어난 지는 알겠는데, 명분이 있는 전쟁은 아니었음에 더 속이 썩어갔을 것 같아.

제1차 세계대전의 승자들은 여러 나라 중 독일을 콕 집어서 전쟁의 주범으로 지목하면서, 특별히 많은 배상금을 요구했어. 독일인들은 너무 부당하게 느껴지고 분했어. 게다가 전쟁으로 인해 경제가 망가졌는데 1929년의 세계경제대공황까지 겹치고, 배상금도 내야 하니 사는 게 너무 힘들었지. 이 때 히틀러가 등장해서 독일인들에게 복수와 경제 회복을 약속해. 프랑스는 지난 전쟁의 악몽 때문에 새로운 전쟁을 필사적으로 피해 왔지만 결국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현실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지. 이제 제2차 세계대전의 시작이야.

독일군은 공격 시작 2주 만에 프랑스 서쪽 해안까지 뚫고 들어가 버리고선, 얼마 안 가 파리를 점령했어! 독일의 전술에 당해 버린 프랑스는 정말 순식간에 전쟁에서 지고 만 거야. 곧바로 휴전 협정이 체결되어 프랑스는 남북으로 나뉘어. 북쪽은 독일이 점령하는 지역이고, 남쪽은 독일에 협조적인 프랑스 정부가 들어섰어. 왜 프랑스군은 계속 싸우지 않고 휴전 협정을 맺었냐구? 이미 전쟁이 끝난 것처럼 보였거든. 영국군은 독일군에게 쫓겨 철수해버렸어. 미국은 지구 반대편에 있고 아직은 참전하지도 않았어. 도와줄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안 보이는데 프랑스군은 이미 무너져서 반격을 노려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어. 이 때 페텡이라는 이름의 프랑스 제1차 세계대전 전쟁 영웅이 말한 거지. 이 전쟁은 이길 수 없는 전쟁이다. 지난 전쟁만큼 많은 희생자를 무의미하게 내지 말자. 지금은 독일에게 항복해서 나라를 보전해야 할 때이다. 전쟁 영웅 페텡은 남쪽 정부의 지도자가 돼. 남북 두 지역 모두 전쟁이 끝날 때까지 독일의 전쟁 물자를 공급하고 사람들은 독일 공장에 노역하는 등 갖은 수탈을 겪게 되지.

반면 독일에 저항하는 세력도 있었어. 이 중 해외에서 활약한 사람이 바로 샤를 드 골 장군이야. 우리가 비행기를 타고 파리에 도착하면 듣게 되는 이름이지? 샤를 드 골 공항! 이 장군은 프랑스가 점령당했을 때부터 계속해서 프랑스의 독립을 위해 싸운 사람이야. 프랑스는 프랑스 땅에선 졌지만 아직 해외 식민지와 영국이 있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한 사람이었지. 치열한 전쟁 끝에 1945년 독일이 패배하자 바로 이 샤를 드 골 장군의 세력이 프랑스를 해방시킨 정통 정부로 인정받게 되고, 장군은 당장은 아니지만 이후 대통령의 자리에 올라.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정말 정통으로 겪은 프랑스는 기력을 잃었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폴레옹 땐 유럽 전체에 영향력을 가진 제국이었고, 세계대전 직전엔 전 세계에 식민지를 가진 나라였잖아. 세계의 중심이었다구. 하지만 이젠 전쟁에 찢기고 지친 나라가 되었어. 그리고 저어 멀리서 참전한, 생산시설과 기반시설에 전혀 피해를 입지 않은 미국이 새로운 세상의 주도권을 잡게 되었어. 

프랑스는 다시 강력한 나라로 서고자 했기에 미국의 돈을 받아 경제를 회복하고, 미국 주도의 군사동맹에 가입하여 안전을 확보해. 이 때 받은 경제적 지원을 마셜 플랜이라고 부르고, 이 때 가입한 군사동맹의 이름이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야. 이로써 프랑스는 빠르게 회복하고 새로운 세계에서 강대국의 자리를 유지하게 됐지만, 한때 세계 제일이었던 그들이 이젠 미국이란 나라에 의지해야만 하게 된 게 씁쓸했어.

남부프랑스 마르세유, 독일군 초소 (1943) – Bundesarchiv, Bild 101I-027-1474-14A

9. 1968년 5월, 학생운동이 나라를 혁명 직전까지 몰고 가

때는 1968년, 독일이 항복한지 2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사회 곳곳은 전쟁 시절의 권위적인 분위기가 남아 있어. 세계대전 이후에도 식민지 알제리와의 전쟁(1954-1962)이 이어졌기도 하고, 또 지금 10년 째 대통령을 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 샤를 드 골 장군이 야! 하지만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가 대학생이 되자, 사회에 만연한 억압이 너무나 갑갑하게 느껴졌지. 그러던 중, 대학교 안에서 시작된 시위가 경찰에 의해 역시나 권위적으로, 심지어 폭력적으로 진압된 거야. 이게 계기가 되어 시위는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가 프랑스 역사 상 제일 큰 파업으로까지 이어졌어. 혁명이 일어날 분위기야. 시민들은 바리케이드를 치고,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고, 정부 관료들은 피신해.

결국 노사 등 각 층의 타협 끝에 혁명이 실제로 일어나진 않았지만, 이 시위를 계기로 프랑스가 개인주의적이고 자유를 보장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고 해.

1968년 5월, 바리케이드 – Tangopaso (1968)

10. 지금의 프랑스

지금, 우리가 프랑스에 가면 무엇이 보이는지, 같이 보자. 

먼저 우리 비행기는 샤를 드 골 공항에 착륙할거야.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에 항복하지 않고 끝까지 싸운 장군이자 대통령, 그래서 해방 후 프랑스의 자존심을 지켜냈을 뿐 아니라 전쟁 승자의 지위를 얻게 해준 그의 이름을 들으며 우린 프랑스에 도착해. 

여행을 다니면 파리에선 나폴레옹의 개선문, 프랑스 혁명의 중심지 콩코드 광장, 그리고 루이 14세가 살던 베르사유 궁전을 볼 거야. 교외로 나가면 보이는 끊임없는 농경지들에서 프랑스가 현재도 큰 농경국가이고, 예전에도 혜택받은 기후와 땅에서 농사를 지었겠구나 생각이 들어. 그래서 로마도 이 곳이 탐났고, 게르만족이 공격해왔고, 중세에 주위 국가에서 공격해 왔겠구나. 그러면 곳곳의 영주들이 아직도 전국에 남아있는 성들에서 기사들을 모아 싸웠겠구나. 

도시로 가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돼. 억양이 조금 다른 프랑스어를 쓰는 사람들도 있고, 알제리나 아프리카 쪽에서 온 이민자 후손들인 경우도 많아. 이걸 보면서 프랑스의 식민지 역사와 지금 사회가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새삼 느끼게 돼.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 분위기가 상당히 수평적인 것 같아. 식당이든 가게든 서비스직을 만나도, 한국과 느낌이 다르길래 좀 생각해봤어. 한국은 손님을 우대해주려는 생각이 있는 것 같은데, 반면 프랑스는 ‘서비스를 해주지만 나보다 높게 생각하진 않는다’는 사고방식이 느껴지는 것 같아. 이런게 아주 오래된 프랑스의 개인주의적이고 수평적인 문화가 아니라, 1968년 학생운동으로부터 많이 영향받은 분위기이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리고 어딜 가도 잘 통하지 않는 영어에, 세계 대전 후 미국 중심의 세계에서 대국 프랑스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고자 하는 모습이 보여. 

이 글을 적기 위해 읽은 프랑스 역사책 저자는 지금을 ‘프랑스가 세계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고자 하는 시기’라고 평했더라. 이렇게 프랑스 역사의 흐름을 따라와 보니 지금의 프랑스 모습에서도 더 많은 것이 보이고, 프랑스가 어떤 자리를 찾아갈지 더 흥미롭게 지켜보게 될 것 같아. 

파리 라데팡스 – Jean Pascal Hamida (before 2014)


이 글은 아래 세 권의 책을 읽으며 썼어.

  1. Lucien Bély, Histoire de France,  Gisserot, 2017
  2. Jean-Joseph Julaud, Histoire de France pour les Nuls en 100 événements, Pour les Nuls, 2023
  3. Le grand Larousse de l’Histoire de France, Larousse, 2020

어릴 때부터 여러 개의 세계사 책을 읽었지만, 서양사 전체를 읽다 보니 너무 헷갈렸어. 왕도 많고 전쟁도 많고, 서로 결혼해서 관계도 복잡하고. 그러다 보니 결국 무슨 흐름인지 모르겠더라구. 그런데 이번에 처음으로 프랑스의 역사에만 집중해서 읽어보니 훨씬 이해가 쉽더라. 또 프랑스가 서양사에서 중심적인 위치에 있으니, 프랑스 역사를 이해하면 그걸 기준으로 해서 다른 나라들의 역사도 더 잘, 헷갈리지 않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프랑스에 여행을 가게 되었든, 세계사에 흥미가 있는 것이든 이 글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 읽어줘서 고마워. 난 공부하면서, 적으면서 아주 재밌었어. 안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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